일반적으로 놀이와 예술이 다르마고 느끼는 이유중에 하나가 아까 말한 '안테나 얘기' 와 같이 내가 해야할 분명한 역할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직업적인 소명의식이랄까. 거대하게 말하면 신으로부터 받은 '소명의식'이 예술안에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없는 놀이와는 다르다고 느끼는것이 아닐까한다. 비슷한 얘기인 것 같다. 그것은 조금 구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평상시에 '삶을 위해서'의 놀이란 좋다. 그런데 '작품활동을 하면서'의 놀이란 좋은 것인지는 잘모르겠다. 앞으 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이상은씨의 놀이문화는? 나는 많은 사람과는 아니지만 술을 마시고, 얘기한다. 얘기하는것이 제일 좋다. 그리고 여행가는 것을 좋아한다. 나에게 놀이는 여행이다. 여행 가서 새로운 것을 보고, 말 안 통하는데 멍하니 서있고. 이런 것은 너무나 즐거운 놀이이다. 그런 것이 놀이라고 생각하지 노래방 가는것은 정말 싫다.
여행이 주는 미덕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미덕까지 나오면 할말이 없다.
그러면 여행이 주는 재미는 무엇인가? 내 자신이 여행자라고 생각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여행이 있어서 선택한다기보다 나그네적인 요소는 누구나 갖고 있다. 피 속에 슈트케이스 (여행 가방)가 떠다니고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내 피 속에 그런 것이 있는 것 같다.
타고난 '역마살'이 있다는것인가? 역마살이라는 말은 좀..
나쁘게 들리는가? '살' 자가 끼면 좀 안 좋다. 그냥 보헤미안적인 기질이 있다. (웃음)
방랑의 기질이 있다는 것인가? 방랑은 목적이 없어 보인다. 전혜린씨 글 중에 '보헤미안'이라는 말이 있는데, 거기에는 로망이나 로맨스가 있다 사실 나는 로맨티스트이다.
주량은 어느 정도인가? 마음먹으면 많이 마신다. 데킬라 한두 병을 마신 적이 있다.
주정도 하는가? 언제나 그렇게 마시는 것은 아니다. 평상시에 어른처럼 있는 편이다. 오늘은 내가 왜 기분이 좋으냐면 데뷔 10 주년이기 때문이다.
생각나는 유명한 주사는? 나로서는 창피한데 공적인 장소인데도 불구하고 데킬라를 그렇게 많이 마시면 춤을 춘다. 정말 부끄럽다. 춤추는 장소가 아닌데 춤을 춘다. 그건 주사다. 더러운 주사다.
남들이 즐거워하지 않는데도 춤을추는가? 대부분이 즐거워한다. 그것이 창피하다.

"광연의 도가니 속에서도 어느 순간에 중간자적인 면을 보여주었다"

영향받은 뮤지션은? 많다. 20대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일본 같은데서 영향받은 뮤지션이 누구 냐고 하면은 잘난척하느라 아무에게도 영향받은 적 없다고

니까 내가 너무 마음이 아프다. 나서지 말자, 만나지 말자고 생각한 시기가 있었다. 지금은 여기가 나의 홈그라운드이다. 부모님이 계시고, 마음이 편하고, 말도 영어보다 잘 하고.. 그런 의미에서는 굳이 틀을 만들 필요도 없고, 나를 왜 그렇게 다루냐고 얘기하고 싶지도 않다.
이렇게 다루어주었으면 하는 방향이 있는가? 이를테면 버브의 경우에도 버브가 실렸던 영국 잡지들을 다 수집했다. 나는 페이스라는 잡지를 좋아한다. 거기서 다루는 것을 보니 음악을 하는 사람 이라고 해서 음악만을 다루는 것은 아니었다. 음악 얘기만 한다기보다도 어떤 유기체를 만든다. 음 악이라는 뿌리가 있고, 아티스트라는 줄기가 있고, 가지가 있고. 그런데 멀리서 보면 "이 사람이 음악 하는 사람이구나"하는 식이 좋은 인터뷰어가 뮤지션을 다루는 방법인 것 같다. 부분적으로 가정 얘기, 애인 얘기도 나온다. 그렇지만 그 부분은 짧다. 짧은 부분이지만 다 읽고 나면 정말 음악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구나하고 느끼게 한다.
말한 김에 애인 얘기를 하면.. 예전에 말한 것을 보면 잠잘 때와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을때가 가장 편하다고 하였는데. 솔직히 말하면 음악 만한 애인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내게 정서적인 충격을 주거나 정서적인 만족감을 주거나 정서적인 행복감을 준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 음악을 할 때 느끼는 어떤..
환희라는것? 환희라기보다는 기쁨이다.
애인에 대해 솔직하게 얘기해서 감사한데 음악을 따로 떼어두고 생물체로서 사람의 형상을 한 무언가를 얘기한다면. 사실은 리처드 애쉬크로프트를 정말 좋아한다. 나는 상당히 기쁜 것이 처음에 버진 레코드에 들어갔을때 담당했던 언니가 이시히상이라고하는데, 그 언니가 지금 버브를 담당한다. 잘하면 만날 수도 있다. 반 농담이고, 반 진담이다.
현재 구체척으로 사귀고 싶은 사람은 있는가? 내가 보기에는 뚜렷이 없고,
우리 엄마는 신현준을 좋아한다. 박진영도 좋아하는데 나는 관심이 없다.
여자보다 아름다운 남자를 좋아한다고 했는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취향인가? 그것은 어릴 때 순정 만화를 너무 많이 보아서 그렇다. 내일 모레가 서른인데 그것이 바뀌지가 않는다.
'꽃미남’ 같은 타입을 좋아하나? 그런 사람도 만나보았는데 뭔가 간이 안 맞는다.
자신이 좋아하는것에는 편집증적으로 빠지는 면이 있는것 같은데, 그것이 사물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나같은 경우는 사람 한가지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 모두가 한꺼번에 들어간다. 그 중에 사람이라는 요소도 들어있고, 동시에 다른 문제를 가지고 생각할 때도 있다. 다들 밸런스를 가지고 빠지면 괜찮겠지만 난 한꺼번에 그런다. 그럴 때는 나를 안 보는 것이 좋다. 우울증 증세 비슷 한데 뼈를 깎으면서 생각한다.
심리적인 기복이 심한편인가? 그런 것은아니다. 모든 예술 하는 사람들이 자기만의 시간이라든가 무엇인가에 침잠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노래에 내가 소외되었을 때는 아무 의미가 없다"

이상은씨가 만든 곡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은? 앞으로 만들 곡.
이제껏 만든 곡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가? 그런 얘기는 아니다.
이제껏 만든 곡들 중에서 가사 면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곡은? 나는 앨범 아티스트이다. 한 곡 한 곡을 생각하는 그런 작곡가는 아니다. 앨범 전체를 다 듣지 않으면 말 할 수 없다. 곡 하나만 뽑으라면 약간 서늘해진다.
앨범이 하나의 컨셉을 가진 한 작품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좋고, 마음도 편하다. 앨범 전체를 하나의 흐름으로서 본다는것은 상식적인 경우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음악을 하고 있다.
89년 1집과 90년 2집은 자신의 작품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그 당시 이상은은 '노래부르는 인형’이라는 느낌인데. 그 때는 정말 그랬다. 노래 한 곡

"나의 감수성은 그 때만큼 파란색, 빨간색처럼 컬러풀한 적이 없었다"

2집 발표후 뉴욕으로 그림 그리러 갔었다. 당시의 갈증은 무엇이었나? 당시 어마어마하게 힘들었다. 그 때 '밤의 디스크 쇼’ 라는 프로그램을 하고 있었다. 그나마 자기 표현을 할 수 있는 장이었다. 그 때 유지나씨가 작가이셨는데 글이 좋았다. 그 글을 읽으면서 많이 생각했었다. 그 때는 성숙하고 얌전해 보였다. 중간 중간 시간이 비면 내가 내 생각을 글로 써서 얘기할 수 있었다. 그 시간이 참 좋았었다. <담다디>로 '우와~' 하며 뜨고 나서 아저씨들이 이상한 곡을 채집해오면 나는 부르고 싶지 않았다. 목이 쉬었는데 노래를 부르게해서 그것을 팔아먹는 모습을 보기 싫었다. 그때 당시 하도 울어서 베개가 누런색이었다. 이해가 안 가니까. 그래서 어떻게든 도망을 가야지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의 내가 좋다. 그 때 그냥 거기 남아 있었으면 어마어마한 부자가 되었겠지만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여하튼 그 프로에서 그것을 쓰고 읽으면서 꿈을 키워나갔다.
왜 뉴욕이란 곳을 택하였는가? 다인종 집단이 혼재하는 곳에서 자신을 숨기고 싶었나? 미술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런 화인아트를 하려면 어디가 좋은가라는 생각을 하였다. 처음에는 일본을 갔었다. 아버님이 제발 부탁이니 먼데는 가지 말라고 하셨다. 내가 외동딸이다 보니. 그래서 일본에 갔는데 정말 황량했다. 지금은 일본에 아는 사람들이 있어서 좀 친숙하지만 그 때는 너무 힘들었다. 일단은 언어를 공부해야 해서 학원을 다녔는데, 한달 하고 그만두었다. 너무 재미없었다. 결국 뉴욕으로 갔다. 거기서 역시 두 가지를 병행했다. 레코딩 스튜디오는 브로드웨이에 있었는데, 그 주인이랑 친해져서 나중에 「공무도하가」만들 때도 거기서 데모 앨범을 만들고는 했다. 그래서 나온 음반이「더딘 하루」라는 앨범이다. 나로서는 겨울에 만들었기 때문에 추운 바람하고 뉴욕거리하고 눈 오던 기억밖에 없다. 참 말이 없었다. 그 앨범을 만들고 학교를 들어갔다. 방학때 한국에 나와서 그 앨범을 소개했다. 그리고 같은 뉴욕에 있어서 양희은 선배님을 알게 되었다. 나는 양희은 선배님이 되게 무서웠다. 또한 양희은 선배님이 소개시켜준 김홍순 씨라는 분을 알게 되었다. 그 분이 자기 아파트에 녹음 기자재를 가지고 있었다. 그 분은 하우스뮤직이나 힙합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멜로디 없이 리듬을 만들면 내가 그것을 듣고 즉흥적으로 노래를 하거나 멜로디를 만들어 놓은 다음에 가사를 써서 정리를 했다. 정리 후 많은 변화가 없는 코드를 만들어 놓으면 내가 거기다가 멜로디를 입혔다. 상당시 재미있었다. 방향성이 제시되어 있는 상태에서 내가 춤을 췄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만든 앨범이 4집 「Begin」이다. 그 다음에 <언젠가는>이라는 노래가 들은 5집 앨범이 나오게 된다. 나의 감수성은 그때만큼 파란색, 빨간색처럼 컬러풀한 적이 없었다. 그때 한참 감성적인 세계들이 마음속에서 생겨났었는데, 그것은 담는 그릇이라는 음악 자체가 한국의 가요라는 틀을 많이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을 어떻게 해서든지 깨려고 노력한 앨범이다. 그 사이 강신자씨라는 분을 만나게 되었다. 나의 인생에 빼놓을 수 없는 후천적 어머니이다. 강신자 씨에 대해 얘기하자면 상당히 얘기가 길다. 신자 언니는 (이상은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냥 만나보면 학생 같지만 그 정신세계는 어마어마하다.「더딘 하루」,「Begin」이 상황까지도 내가 두발로 걷기 시작한 것이기는 하지만, 내가 신자 언니를 만나지 않았다면 아직까지도 지도가 보이지 않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어두운 곳에서 헤매고 있을 때 스포트라이트를 비쳐주며 갈 길을 보여준 사람이 신자 언니를 비롯한 일본에 계신 분들이다. 나는 내가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한국에「더딘 하루」라는 앨범을 가지고 왔을 때 신자 언니가 취재를 왔었다. 인터뷰를 했는데 금방 친해졌다. 너무 좋았다. 눈이 어떻게 그렇게 반짝반짝 거리는지.. 정말 맑다라고 느꼈다. 그 언니와 찍은 사진도 있는데 알프스소녀 하이디 같았다. 그것이 첫 만남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그 분이 곱게 편지를 써 보내주었다. 나는 일본 사람이 다 그런 줄 알았다. 재일 교포 3세이긴 하지만.. 편지에는 "여기 구마모토에 친구들이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