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 김민규

...90년대 초반 세상을 시끌벅적하게 만든 장본인이지만 섬광처럼 짧은 생존을 끝으로 자연소멸될 운명에 처한, 미국 시애틀로 상징되는 90년대 낙오된 젊은이들의 문화. 80년대 극도로 보수화된 사회를 경험했던 젊은이들이 여피(Yuppie)적인 삶과 가식적인 메인스트림 록을 부정하며 '지하'에서 간간히 생존해 오던 흐름을 전면적으로 표출해 낸 그런지(grunge)는 70년대 펑크의 애티튜드를 재현하며 기존의 흐름을 대체하였지만, 동시에 자기파괴적인 태도도 내재하고 있었다. 이러한 태도 덕분에 '목소리 없는 세대의 목소리'라는 수사어가 그들에게 붙었고, 너무 빠르게 진행된 메인스트림의 점령과 패션화, 그리고 작위적인 이들에 대한 규정은 맥이 끊길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였다. 일부에서는 반-주류적인 태도를 보이던 이들에 대해 백인 중산층 문화 또는 낙오한 지식인 문화라고 비아냥거리기며 '세상에 불만투성이 뿐'인 이들로 보기도 하였다. (이러한 것의 묘사는 영화 '클루리스', '뮤리엘의 웨딩'의 장면에서 공공연하게 드러난다.) 그런지의 창궐은 (물론 그 이전에 이미 존재하였던) 인디 레이블, 로우 파이 등의 흐름이 재조명되는 기회를 가져왔고, 조용히 묻어버릴 수도 있었던 선배들의 복권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이들의 축제로는 페리 패럴이 주도한 롤라팔루자가 있다. 그리고 80년대 창궐했던 '헤어 메틀'이라고 불리우던 (주로 LA 메틀 밴드) 헤비메틀 밴드들의 존재 근거를 상실시키기도 하였다. 그런지는 네오펑크와 함께 국내에서도 90년대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존재양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현재 형성되고 있는 클럽 문화와도 일정한 관계를 갖고 있다. (이들이 살아가던 모습에 대한 자세한 것은 영화 '싱글스(Singles)'와 '하이프(Hype)'를 참고하시기를.)

시애틀이라는 지역명이 붙어도 무방했던 시절은 너바나의 폭발과 함께 종말을 맺는다. 물론 그 이후에도 시애틀출신의 밴드들이 꾸준히 등장하지만 이미 그들간에는 암묵적으로 동의되던 사항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얼터너티브라는 단어로 통칭되는 이들의 시작은 70년대 펑크의 80년대 미국의 하드코어, 그리고 헤비메틀의 흐름이 복합되면서이다. ( 그 이전 얼터너티브는 장르를 지정하지 않는, 반-메인스트림적인 음악을 통칭하곤 했다.) 이들의 태도면에서 펑크와의 연계를 짓는 것은 전혀 어색한 것이 아니지만 이들이 보여준 음악의 스펙트럼은 그 범위를 규정짓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초기 그런지 밴드들의 음악에는 블랙 사바스, 스투지스의 영향들이 혼재되어 있으며 그 이후 크로스오버되는 경향이 강해진다.) 영화 'Hype'에서 보여지듯 이들의 시작은 그리 화려하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규정되어지는 세상에 대해 불만이 있던 청년들이 조야한 장비를 가지고 직설적인 사운드를 내며 시작한 이들의 선배격으로 소닉 유스, R.E.M., 픽시스(Pixies), 제인스 어딕션(Jane's Addiction), 휴스커 듀(Husker Du), 미트 퍼펫츠(Meat Puppets)등이 있다. 이들 중 몇몇은 그런지가 메인스트림으로 창출되기 이전부터 이들에 대한 공개적인 지지를 하기도 한다(소닉 유스, 닐 영, 그리고 패티 스미스등이 그랬다). 어의 그대로의 그런지 1세대에는 머드허니(Mudhoney), 그린 리버(Green River), 스킨 야드(Skin Yard), 멜빈스(Melvins), 너바나(Nirvana), 사운드가든(Soundgarden), 앨리스 인 체인스(Alice In Chains)등이 있다. 그리고 이들이 메인 스트림으로 본격적인 진출을 하는 시기에 펄 잼(Pearl Jam), 스매싱 펌킨스(Smashing Pumpkins)등이 등장하고 그 이후 수많은 후속주자들이 뒤를 따랐다. 얼터너티브라는 어의에 대해서도 그랬고, (언제나 그렇듯이) 다른 밴드와 하나로 묶여 이야기되는 것에 대해 크게 반감을 갖기도 했던 그런지로서의 시애틀 씬은 포스트 그런지라는 단어가 사용됨과 함께 현재 자연 소멸되어 가고 있다.

그런지라는 단어가 지시하듯 이들의 패션의 특징은 한마디로 '지저분'이다. 그 외에 큰 공통점과 규칙을 갖고 있지 않은 이들의 패션은 절대 인위적인 '지저분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들의 생활 방식을 그대로 드러내 주는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이들의 삶에 대한 태도였다. 그리고 이들의 사운드와도 적절히 어울리는 것이었다. 아무렇게나 걸친 듯한 체크 무늬 티셔츠, 찢어진 청바지 등은 절대 고가인 것이 없었고, 당연히도 화장을 하지도 않았다. 물론 일부에서는 이러한 패션을 따르려 일부러 지저분해지려는 이들도 생겨났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설명해 준 가이드도 있었다.

TEXT | 김민규

..랩, 브레이크 댄스, 그래피티, 패션, DJ잉(DJing)등으로 상징되는 80년대 대표적인 아프로-아메리칸의 문화. 이전 자신들이 창출해 낸 R&B, 소울 등이 상업화되고 디스코가 세상을 휩쓸던 시절 이들은 또다시 자신들의 게토에서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 내었다. 훵키한 그루브에 실린 지껄여대는 랩으로 상징되는 힙합은 미국 내 흑인이 살아가는 방식 그 자체였고, 랩은 그것을 표출해 내는 방법론이었다. 지금은 보기 힘들어졌지만 한 손에 포터블 카세트를 들고 어디에서나 춤을 추며 그래피티를 그려대던 이들은 B-보이(B-Boy, 함께 브레이크 댄스를 추며 무리를 이루던 이들)라 불리우며 집단을 형성하였고, 이들의 생활 방식과 음악, 패션모두 현재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스파이크 리가 자신의 영화 '똑바로 살아라'에서 퍼블릭 에너미의 음악을 전격적으로 사용한 것은 이러한 면에서 적절한 것이었다. 힙합은 대중화의 과정을 겪으며 세상 속으로 확산되었고 비스티 보이즈 같은 훌륭한 백인 래퍼를 낳기도 하였으며 댄스 플로어에서의 계속된 변모는 미국 내에서 한정되지 않았고 영국으로 건너가 그 곳 클럽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으며 현재 일렉트로니카의 자양분이 되기도 하였다. 상업화의 과정 속에서 굴절되는 랩에 반대하는 이들이 본질로서의 랩을 주장하며 갱스터 랩의 흐름을 창출하였다. 하지만 이들은 서부와 동부의 지나친 갈등을 겪으며 존재 기반을 잃고 있으며, 반대급부로 얌전한 래핑을 하는 이들이 대두되고 있기도 하다. 현재 랩은 다른 음악과의 크로스오버를 통해 많은 하이브리드를 낳고 있다.

'지껄이다'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고 있는 랩(Rap)은 초기 R&B의 힙(hip)한 측면이 발전한 훵키한 그루브에 클럽에서 MC들이 믹싱과정에서 흥을 돋구기 위해 곁들이던 것이 발전되어 지금의 형식으로까지 발전되었다. 공식적으로 랩이 빌보드에 등장한 것은 80년 초였지만 자마이카의 레개 DJ에 영향을 받은 70년대 중반 뉴욕의 DJ들에 의해 믹싱과 스크래칭, 랩이 시작되었고, 80년대에 이르러 대중화되었다. 랩 뮤지션을 올드 스쿨, 뉴 스쿨로 구분이 되도록 기점이 되는 이가 런 DMC이다. 제임스 브라운을 우상으로 삼던 초기의 커티스 블로우, 팹 보이스 같은 아날로그적인 사운드의 올드 스쿨 랩퍼들에 비해 뉴 스쿨 래퍼들은 샘플링을 이용한 발전된 사운드를 선보였다. 특히 런 DMC는 훵키한 리듬 중심의 이전 래퍼들과 달리 록 비트를 차용하였고, 에어로스미스와 <Walk This Way>를 함께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런 DMC는 힙합/랩 전문 레이블인 데프 잼을 설립하였다. MC해머는 랩을 대중화시킨 장본이었지만 그 이전 LL Cool J., Dr. 드레가 있었던 N.W.A. 비판적인 가사와 정치적 지향을 보이던 퍼블릭 에너미등이 있었다. 이제 전국적인 현상이 된 랩은 뉴욕을 벗어나 동부의 필라델피아, 서부의 LA, 오클랜드 등이 중심지로 대두되었다. 이제 강조된 일렉트릭 비트는 힙합이란 이름을 통칭되기 시작하고, 하드코어 펑크 밴드였던 비스티 보이즈는 백인 래퍼로서 혁신적 사운드를 선보인다. 80년대 말에는 대두하기 시작한 갱스터 랩은 아이스 큐브, Dr. 드레, 아이스-T, 스눕 도기 독, 투팍, 사이프레스 힐, 노토리어스 B.I.G. 등에 의해 창궐하지만 서부와 동부의 갈등은 투팍과 노토리어스 B.I.G.의 죽음으로 결론되어지고 스스로 자정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90년대 어레스티드 디벨롭먼트나 퓨지스와 같은 힙합의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는 이들이 나타났고, 퍼프 대디와 같이 친-메인스트림적인 래퍼들도 등장하였다. 이미 이전에도 다른 장르의 음악과 크로스오버를 이루어 '뉴 잭 스윙'등의 스타일을 낳았던 랩은 록, 일렉트로니카의 크로스오버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전의 흑인 문화들이 그랬듯이 80년대 거리 문화로 존재하던 힙합은 이제 주류 중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으며 이들이 형성시킨 패션도 그러한 위치까지 격상되었다. (영화 '패션 쇼'에서 웨슬리 스나입스가 분한 디자이너는 이러한 거리 패션을 가지고 등장한다.) 현재 우리에게 인식되는 힙합 패션은 걸러지고 굴절된 상태의 것이기는 하지만 길거리 문화로서 힙합은 거리에서 춤추기 편한 헐렁한 스타일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영웅들인 스포츠 스타의 유니폼을 즐겨 입으며 과장된 크기의 옷을 즐겨한다. 지금은 무척이나 깔끔한 스타일이지만 시작부터 그러했던 것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