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DJ Shadow
Endtroducing : 1996 / Mowax
DJ Shadow (DJ)
샘플러에 눈을 뜨게 해준 앨범


2. Red Hot Chili Peppers
Blood Sugar Sex Magik : 1991 / WarnerBros
Anthony Kiedies(v), John Frusciante(g), Flea(b), Chad Smith(d)
채드 스미스의 드럼 교습 비디오를 보라!


3. Puffy
Jet CD : 1998 / Sony
Ami(v), Yumi(v)
대중성과 음악성의 조화. 아미 & 유미 + 오쿠다 타미오는 최고의 콤비가 아닐까


4. Poritshead
Dummy : 1994 / Polygram
Geoff Barrow (prog, rhodes)
댄스곡도 암울할 수 있다


5. The Magnetic Fields
The Wayward Bus : 1991 / Merge
Stephin Merrit(g, v), Susan Anway(v)
인디팝의 신화. 아바, 브라이엇 윌슨 그리고 스테판 메릿


6. Seam
Headsparks : 1991 / LSR
MacMccaughan (d), Lexi Mitchell(b), Sooyoung Park(g,v)
그들은 애국심에 결코 호소하지 않았다.


7. Red House Painters
Songs For A Blue Guitar : 1996 / Island
MarkKozelek (v,g)
웨스트 코스트의 게으름쟁이들을 위한 송가


8. Elliot Smith
XO : 1998 / Dreamwarks
Elliot Smith(v, g)
타이타닉아 저리 비켜라


9. Snowpony
The sloMotionWorld of Snowpony : 1998 / Radioactive
Katherine Gifford(v, key), Max Corradi(d), Deb George(b)
세기말 최고의 슈퍼밴드. 스테레오랩 +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무슨말을 더하리


10. Far
Water & Solutions : 1998 / Immortal
Jonah Sonz Matranga (v, g), Shaun Lopez(g), John Gutenberger(b), Chris Robyn(d)
포스트 그런지의 미래?







1. 노이즈 가든
1집 : 1996 / 베이
윤병주(g), 박건(v), 이상문(b), 박경원(d)

명반이란 이런 걸 두고 하는말이다.
   


2 . 빛과 소금
1집 : 1990 / 서라벌레코드
장기호(b, v), 박성식(key), 한경훈(g)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


3 . 이한철
되는건 되는거야! : 1996 / 현대음향
이한철(v)
더 많이 알려졌어야 할 앨범


4. 김광민
지구에서 온 편지 : 1992 / 워너뮤직
김광민(key), 부르스 거츠(b), 존 램시(d), 허만 존슨(sax), 브렌다 페리(flute)
일요예술 무대가 그의 전부는 아니다


5. 장필순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 1997 / 하나뮤직
장필순(v), 조동익(b, g), 함춘호(g), 윤영배(g), 박용준(key), 김영석(d)
80년대의 영광이 이 앨범에 있다.



일시 : 1998년 10월 16일 (금) 6-9시 장소 : 정동 아지오 대담 : 김민규, 윤준호 VS 박준흠 사진 : 이정실

PC통신 하이텔을 통해서 95년 3월에 결성된 델리 스파이스는 아직도 PC 통신상에서 멤버 모집 후 밴드를 결성해서 유명해진 유일한 뮤지션이다. 이는 대개의 우리 나라 사람들이 음악을 좋아한다는것과 직접 한다는 것을 별개의 문제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가 될 수도 있다. 김민규(기타, 보컬), 윤준호(베이스, 보컬), 이승기(키보드), 오인록(드럼, 현재는 최재혁)이라는 음악을 사랑했던 일군의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연주(합주)를 취미로써 시작하였지만 당대의 조류를 읽음으로써 국내에 ‘모던 록’이라는 하나의 트렌드를 도입했고, 자신들의 동의 여부를 떠나서 한국의 대표적인 모던 록 밴드가 되었다. 한국적인 스타일의 모던 록을 만들어낸 델리 스파이스를 생각하면 80년대 중반에 역시 한국 록의 새로운 지평을 연 들국화라는 밴드가 생각난다. 만약 전대의 뮤지션과 후대의 뮤지션들간에 교감이란 것이 존재했다면 지금 들국화와 같은 밴드가 수십개가 되어야 마땅하겠지만, 국내에는 단절감만이 느껴졌고 그래서 들국화는 잊혀진 밴드가 되었다. 그리고 들국화의 영향력도 지금은 사라진지 오래이다. 또 다시 모던 록의 시작을 알린 역사적인 데뷔 음반을 낸 델리 스파이스도 그들의 세대에서만 존재해야만 하는가?
"매니아들은 현실성 없는 음악을 많이 듣고, 뮤지션들은 트렌드에 둔감하다"

요즘의 근황은? 미국 여행 후 얼마 전에 귀국했다. 미국은 예전부터 가고 싶었었고, 2집 녹음 등을 고려한다면 시기적으로는 지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갔다왔다. 앞으로 나올 2집에 대해서 멤버들이랑 얘기할 준비를 하고 있다. (김민규) 민규가 여행하는 동안 재충전의 기회를 가졌다. (윤준호)
델리 스파이스 2집 음반 작업이 늦어지는 이유는? 데뷔 음반은 작년 말쯤에 접었어야 했는데, 의외로 뒤늦게 인기를 얻기 시작해서 1집 관련해서 활동하느라 2집이 늦어졌다. 1집은 지금도 꾸준히 팔리는 희한한 앨범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PC 통신 하이텔에서 만나서 95년 3월에 델리를 결성했다. 굳이 PC 통신 상에서 멤버를 구한 이유는? 처음에 민규가 광고를 냈고, 내가 민규를 찾아갔다. 나머지 멤버들을 모은 후 그해 8월 드럭에서 처음으로 공연을 했다.
그해 여름에 프리버드에서 델리 공연을 본 기억이 난다. 특히 클럽 무대에서 연주하는 기타리스트답지 않게 김민규씨가 커다란 랙 타입 이펙터를 들고 다닌 것이 이색적이었고, 톤 감각이 굉장히 좋았다. PC 통신에는 다양한 기호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했다. 내가 모르는 음악을 듣는 사람들도 많았고. U2나 R.E.M. 같은 경우도 그 당시 내 주위에서는 몰랐다. 지금도 아는 사람들의 범위를 조금만 벗어나면 그들을 모른다. 통신 게시판을 보면서 같이 밴드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광고를 냈는데, 단 한 명 찾아온 사람이 윤준호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과 직접 한다는 것을 별개라고 생각하는 것 같나? 그렇다. 매니아들은 현실성 없는 음악을 많이 듣는 것 같고, 뮤지션들은 트렌드에 둔감하다. 매니아들도 음악을 집에서 듣는 사람들과 라이브를 통해서 들으려는 사람들로 나뉘어져 있다.
델리 이전이나 이후에 통신에 멤버 모집 광고를 내서 밴드 결성 후 유명해진 뮤지션들이 있나? 아마 없을 것이다.
멤버(보컬) 추가 의사는? 윤준호나 나는 보컬을 먼저 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보컬에 대한 자신은 없었다. 그래서 보컬리스트를 구하려고 노력을 했지만 우리가 원하는 스타일의 보컬을 구하지를 못했다. 대부분이 메틀 보컬 스타일이었다.


"에지의 기타 딜레이 사운드의 노하우를 밴드를 통해서 연주해보고 싶었다"


델리 결성 시 당신들이 하려고 했던 음악은? 당시는 앨범 만드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U2, 그린 데이 등을 카피했었다. 합주할때 재미있을만한 곡들을 연주했었다. 처음에는 프로 뮤지션을 꿈꾸지 않았다. 델리 멤버들을 구해서 밴드를 결성한 것은 그 당시 알아낸 에지
(U2)의 기타 딜레이 사운드의 노하우를 밴드를 통해서 연주해보고 싶어서였다. (김민규를 보면서) 그런 속셈이 있었다니. 이는 처음 알았다. 굉장히 고생을 하면서 알아낸 것이었다. 합주를 해보고 싶었다. 아~ 목이 탄다. 이용을 당한 것 같다. (웃음)
그러면 에지 기타 딜레이의 비밀은? 일반적인 딜레이 방식이 아니라 한 음표마다의 딜레이와 컷이다. 그래서 사운드가 화려하게 들린다.


2집에서 추구하려는 음악은? 멤버마다 다르다. 아마 다들 머리 속으로는 딴 생각들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아직 정확히 같이 얘기해보지는 않았다.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서 포크에 대한 매력을 많이 느꼈다. 포크를 하지는 않겠지만 그런 느낌이 담긴 음악을 했으면 한다. 해보고 싶은 스타일이 많다. 굳이 한 스타일에 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90년대 록을 얘기할 때는 메시지가 강조되기도 하였다. 델리의 음악은 메시지를 갖고 있는가? 우리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약간은 내성적이면서 다른 사람들과 잘 융화가 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닐까한다. 한마디로 삐딱선을 타는 사람들이 우리 음악을 듣고 공감한다고 생각한다. 메시지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상을 얘기해도 메시지로 들려질 수가 있다. 민규의 가사는 독설이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남에게 강요하는 식은 아니다.
델리가 다루려는 음악적인 소재는? 살아가면서 느끼는 개인적인 감정을 음악에 담는다. 만화나 영화를 보고 난 다음의 감상을 담기도 한다.
얼마 있으면 서른 살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김민규 28, 윤준호 29, 이승기 23, 최재혁 24). 이는 곡을 만드는 데도 영향을 끼칠 것 같은데.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
데뷔 음반 전의 데모는 거의 전 곡이 영어 가사였는데. 외국 음악을 듣고 자랐기 때문에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나중에 우리말로 가사를 스면서부터는 오히려 쓸수가 없었다.
자신들의 곡 쓰기 역량을 자평한다면? (목소리가 올라가지 않으므로) 나는 ‘미’를 넘지 않게 하려고 한다.
멤버들의 성향은? 나는 차분하고 읊조리는 스타일의 음악을 좋아한다. 승기는 인더스트리얼 팬이다. 재혁은 하드한 음악을 좋아한다. 나는 잡식성이다. 힙합, 일본 음악도 좋아한다. 1집 음반을 내기 전에 신경 썼던 것은 ‘백화점’식의 음반을 만들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스타일을 베꼈다는 소리를 들었다면 죽고 싶었을 것이다.

"음악은 삶의 한 부분이다. 손 뻗으면 닿을 수 있는곳에 있고, 가까운 친구이다"
어려서부터 뮤지션이 되고 싶었나? 중학교 때 ‘백투더 퓨처’를 보았는데, 거기서 주인공(마이클 J. 폭스)이 타는 스케이트보드와 주인공의 기타 연주에 매력을 느꼈다. 그때는 스케이트보드를 타면서 (영화에서 나오는 식으로) 어느 차의 뒤에 매달릴까라는 고민도 하였다. 학교 다닐 때는 취미 수준으로 기타를 쳤었다. (델리를 결성한) 대학교 4학년때까지는 음악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냥 취직해서 살 줄 알았다.
어떤 음악을 듣고 자랐는가? 최초로 산 음반은 마이클 잭슨 앨범이었다. 그 당시는 <Beat It>등 마이클 잭슨 열풍이 불었었다. 처음에는 빌보드 차트 음반을 위주로 들었다. 고등학교 때는 헤비메틀을 들었다. 그러나 너무 과격한 음악은 싫어했다. 같은 메틀이라도 스래쉬 메틀보다는 LA메틀을 더 좋아했다. 슬레이어보다는 멜로디컬한 포이즌을 좋아했다. 그리고 음악 잡지에서 좋은 평을 하는 음반을 사서 들었다. 예를 들어 마일스 데이비스의 Bitches Brew등. ‘무슨 음반 100선’ 하면 거기서 1위한 음반은 꼭 사서 들었다. 하지만 Bitches Brew를 사고는 배신감을 느꼈다.

음악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삶의 한 부분이다. 손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고, 가까운 친구이다.
그 음악이 자신을 배신한다면? 이번에 여행을 결심했던 것도 음악 듣는 것이 상당히 지겨워졌기 때문이다. 아무리 어떤 음반을 들어도 좋게 들리는 앨범이 없었다. 음악적으로 지쳐있었다. 고민하는 것도 지겨웠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앞으로 음악 하는 데 안 좋을 것 같았다. 여행하면서 머리를 식혀야겠다는 생각이었고, 그런 상태에서 음악을 들으니까 음악도 다시 듣고 싶어졌고 기타도 다시 치고 싶어졌다.
여태까지의 음악 생활을 통해서 얻은것과 잃은 것은? 얻은 것은 멤버들과 주위의 음악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난 것이다. 잃은 것이라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라는 것이다. 이제는 보통 사람의 삶을 살 수가 없다.
명성을 얻은 데 대해서는? 내가 만든 노래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에는 아직도 신기함을 느낀다. 하지만 내 생활의 중심을 잃어버리는 것에는 두려움을 느낀다. 최대한 나를 지키면서 음악을 하고 싶다.
전업 뮤지션이 되고 싶나? 나는 지금 전업 뮤지션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음악 하는 것을 돈벌이나 밥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는 순간 지루해지고 피곤해진다.

"그래서 눈을 돌린 것이 개성적인 연주를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델리는 특히 기타 톤에 관심을 갖는 것 같다. 기본적인 사운드 메이킹의 방향은 처음에 어떻게 잡았는가? 사운드 메이킹은 합주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작곡은 누구에게 특별히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편곡에서는 음악을 다양하게 들었다는 것이 도움을 받았다. 다른 사람의 음악을 듣다가 “이 부분을 우리 음악에 응용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김민규 씨는 예전에 스튜디오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고 하는데 이는 델리 사운드 메이킹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 음악 스튜디오는 아니었다. 단순히 목소리와 배경음악을 더빙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콘솔 등을 사용해 봄으로써 기계 자체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계기는 되었다. 이펙터는 집에서 독학을 하였다. 예전에 U2의 에지를 특히 좋아했기 때문에 그의 사운드를 만들어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었다. 그의 사운드를 굉장히 신기해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론상으로 간단한 것이지만 그때는 그의 딜레이 사운드 세팅을 알아내는데 몇 달이 걸렸다.
원래부터 기타 톤에 관심이 많았나? 획일적으로 만들어지는 사운드를 싫어했

다.
테크닉 연마는? 예전에는 기타를 잘 치려고 굉장히 노력을 하였다. 한 때는 남들이 하는 스윕 피킹도 하면서 속주도 해보려고 노력을 하였었다. 그러나 잘 되지가 않았다. 내게는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눈을 돌린 것이 개성적인 연주를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평론가들은 어려운 음악을 선호하기 때문에 우리를 시시하게 볼 줄 알았다"
델리는 모던 록 밴드인가? 내부적으로는 ‘No’이고, 외부적으로 구분하기 편하게 얘기할때는 ‘Yes’이다. ‘~록’이라는 카테고리를 싫어한다. 그리고 우리 나라에 알려진 모던 록이라는 명칭은 왜곡되어 알려졌다. TV에서 말하는 모던 록은 주주클럽 스타일이 아닌가? 뮤지션들이 음반을 발표하고 나서 ‘모던 록 창법’, ‘브릿팝’ 스타일 등이라고 말하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한다. 한국 사람이 만든 음악이 어떻게 ‘브릿 팝’이 될 수 있겠는가? 예전에 얼터너티브 록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에 부합되는 밴드라고 생각한다. 한국 가요계에서의 얼터너티브 밴드이다.
모던 록의 정의는? 외국에서는 모던 록이라는 용어가 그리 많이 쓰이지 않는다. 차트 상에서 메인스트림 록, 모던 록이라고 나누기 위해서 있는 용어이다. 외지를 보더라도 오아시스도 록큰롤 밴드라고 하지 않는가? 그리고 80년대에 얘기하던 모던 록이라는 것과 지금의 모던 록은 틀리다. 80년대에는 모던 록이 비주류였지만 지금은 전복이 되어서 80년대 모던 록 차트에 오르던 뮤지션들이 메인스트림으로 올라왔다. 그래서 지금은 모던 록이라는 나눔이 애매해졌다.
영향받은 모던 록 밴드는? 재미있게 카피를 했었던 밴드는 U2와 R.E.M.이다. 그들의 음악은 판이 닳도록 열심히 카피를 했었다. 그 이후는 큐어, 스미스 등을 좋아했다. 샬라탄스를 굉장히 좋아한다. 최근에는 DJ 섀도우를 좋아한다.
모던 록이 당대 또는 음악사에서 갖는 가치는? 예전에는 기타를 몇 년 동안 갈고 닦지 않으면 무대에 선다는 것을 꿈도 꾸지 못했다. 하지만 모던 록이 등장하면서 뮤지션의 성역이 깨졌다.
어려서부터 팝 음악을 듣고(심취하고) 자란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영/미권의 일부로 편입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국내 뮤지션보다는 영/미권의 뮤지션에 친근감을 느끼고, 영/미권의 대중 음악 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리고 이는 결국 국내 대중음악 씬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진다. 영/미권에서 당대의 조류인 얼터너티브/모던 록을 하는 델리 자신들의 음악적인 삶의 정체성은? 나는 단지 나의 음악이 좋아서 연주를 한다.
델리는 현재의 대표적인 록 밴드로 인식되고, 인기도 모았다.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해외 음악에 민감하게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은 “한국에도 이런 밴드가 나왔구나”라는 호기심에서 우리의 음악을 들었을 것이고, 또한 가사의 독특함으로 우리를 좋아했을 것이다. 삐삐 밴드가 만들어 논 분위기에도 도움을 받았다.
델리의 팬 층은? 작년에 블러 공연이 있었는데, 그 때 신기한 경험을 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TV에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길거리에서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블러 공연장에 온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알아보고 사인을 요청했다. 그 것을 본 옆 사람이 “델리의 팬은 블러 공연장에 온 사람들이 다이다”라고 하였다. 아마 델리 같은 음악을 하였을 때 우리 나라에서 기대할 수 있는 팬들의 거의 전부일 것이다.
음반 발표 시 평단이나 매니아보다 대중들이 좋아할 줄 알았다고 하였는데. 우리는 우리의 음악이 너무 쉽다고 생각했다. 데뷔 당시 서구에서 모던 록은 메인스트림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그런 음악을 하면 받아들여지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평론가들은 어려운 음악을 선호하기 때문에 우리를 시시하게 볼 줄 알았다. 우리가 음악을 하던 초기에는 대중들에게 철저히 외면 당했었다. 그때는 그 흔한 스트리트 페이퍼의 인터뷰 요청조차도 없었다. 드럭에 공연할 때 크라잉


 
 
 
 

넛이나 언니네 이발관 등이 재미있는 얘기 거리나 외모로 관심을 불러일으켰지만 우리는 관심밖이었다. 앨범이 나온 이후에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외국에서와 같이 노장 뮤지션이 되어도 활동할 수 있었으면 한다"
지금 한국 대중음악 씬은? 다양한 스타일의 밴드들이 많아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그렇지가 않다. 그리고 당장 서울만 벗어나면 공연할 곳이 없다. 미국 같곳은 땅이 커서 공연해야 할 곳이 많기 때문에 앨범 한 장 내고 각 지역으로 공연을 돌다보면 다음 앨범을 준비해야할 때가 온다. 우리 나라에서는 음악 소비자에게도 문제가 있다. 방송이 이끌어주는것도 한계가 있다. 보통 10대때에는 강하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어필을 한다. 하지만 20대, 30대로 올라가면 그렇지가 않다. 우리는 현재 우리 공연에 오는 젊은 세대들과 같이 나아가고 싶다. 외국에서와 같이 노장 뮤지션이 되어도 활동할 수 있었으면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문화를 즐길만한 여유를 갖고 있지 못하고, 또한 놀이 문화가 없다. 술 먹고 노래방 가는 것이 다인 것 같다.
델리와 같이 거론할 수 있는 뮤지션은? 가깝게 알고 있는 밴드가 누구다라고 밖에는 말못하겠다. 예전의 마이 앤트 메리가 좋았다. 지금도 활동하고 있다면 같이 공연하고 싶다. 그들은 멤버들이 군대에 가면서 그룹이 깨졌다.
지금 우리의 인디, 클럽 씬은 제대로 가고 있나? 미국은 클럽의 입장료와 공연장의 입장료가 거의 비슷하다. 클럽에 간다고 해서 싼 음악을 들으려고 가는 것이 아니다. 다만 클럽은 규모가 작을 뿐이고, 소수의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문화의 장이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클럽은 5,000원에 음료수까지 주니까 간다. 하지만 소극장에서 공연하면 절대 안 간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디 레이블은 적은 비용으로 음반을 적게 만들고, 정말로 그 음악 듣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우리는 현재 메이저 음반사와 계약 관계에 있지만 정말로 좋은 인디 음반사가 있으면 그 쪽으로 가고 싶다.
제대로 된 인디 음반사란? 외국의 인디 음반사는 우리의 메이저 음반사 이상으로 활동을 한다. 홍보 자료 만드는 것도 엄청 잘 한다. 인디는 아마추어가 아니다. 인디의 장점은 적은 비용으로도 고품질의 음악을 만들어낸다는 데 있다. 적은 비용으로 만들었다고 음악도 후지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외국에서는 대가 면에서도 음반이 한 장 팔릴 때 뮤지션이 메이저에서보다 많은 돈을 받는다고 한다.

"혼자 있거나 곡을 쓸때는 이상하게 외롭고 쓸쓸한 느낌을 받는다"
1집이 담고 있는 정서는? 혼자 있거나 곡을 쓸때는 이상하게 외롭고 쓸쓸한 느낌을 받는다. 그런 느낌들이 가사에 많이 담겨 있고, 2집에 또한 실릴 것이다.
<노 캐리어>는 접속 불능을 나타내는 통신 용어이다. <귀향>은 있기 싫은 현실에서의 탈출을 노래한다. 델리는 어떤 ‘차단된 상황’을 원하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델리는 자신들이 벽을 쌓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불 속에 들어가서 이불을 뒤집어 쓰면 굉장히 편한 것처럼 막을 쳐놓고 그 안에 들어가면 편하다. 익숙한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면 부담스럽다. 어렸을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나이를 점점 먹을수록 사람 만나는 것이 두렵다.
매체와의 인터뷰는 어떻게 받아들이나? 경우마다 틀리다. 음악 얘기를 할 수 있는 자리면 괜찮다. 초기에는 이상한 인터뷰가 많았다. “술을 많이 먹느냐? 올가을에 연인과 같이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외계인이 되 본 적은 있는가?”라는 질문 따위이다.
<챠우챠우>는 앨범에서 단연 돋보이는 곡이었다. 이는 기타 사운드가 거대하지 않아도 그루브한 리듬감에 의해서 강렬하게 여운을 남길 수 있음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기타리스트에게 중요한 것은 “테크닉에 앞서 개성적인 톤 감각을 갖고 있는가”인 문제를 보여주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가 않다. 처음에는 <가면>을 싱글곡으로 생각했다.
<챠우챠우>에서는 상대방의 목소리가 듣기 싫다는 것인가, 아니면 그리움, 애증을 얘기하는 것인가? 싫다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연가로 생각하고 있다. 밴드 초기에는 사람들에게 외면 당하는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밴드의 해프닝 등 외향적인 면만 보는 것 같았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가사가 모호하고 곡의 템포가 느리기 때문에 연가로 들린 것 같다. 지금은 그 때 느꼈던 분노가 사라졌기 때문에 연가 같은 느낌이 든다.
<저승탐방기>에 대해서. 이중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곡의 초반에 담고 있다.
<귀향>등을 들으면 김민규 씨의 멜로디 감각은 탁월하다는 느낌이다. 멜로디를 제일 우선으로 생각하고, 그 다음에 가사하고의 매치를 생각한다.
<누가?>에서 ‘머리 큰 너’가 어떤 그룹의 보컬리스트를 지칭한다는 얘기가 떠돌았는데. 머리 큰 사람이 어디 한, 두 사람 이겠는가? ‘머리 큰 사람’이란 외형적인 것이 아니라 많이 배웠다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구체적으로 “신해철이 아니


냐?”라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언니네이발관) 이석원이라는 얘기는 왜 나왔는지 모르겠다. (웃음) 그가 우리보다 ‘백만 배’ 잘났나? 그 얘기는 자기가 하고 다녔다. “델리가 내 욕을 하고 다닌다”는 둥 그러면서 다녔다. 그리고는 우리 라이브에 게스트로 와서는 <누가?>를 불렀다.
<사수자리>는 김민규씨의 별자리로 알고 있다. 일반적으로 별자리에 관심을 갖는 남자는 우리 나라에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리고 강아지도 데리고 다니는데. 나는 강아지를 데리고 미용시켜주는 것을 생활의 하나로 생각하기 때문에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별자리는 재미있는데 왜 다른 사람들은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자신의 연인도 ‘사수자리’에 어울리는 여자로 한정지으려 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만약에 문제가 생기면 별자리때문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데뷔 음반은 직접 프로듀싱을 하였는데. 그것은 보컬을 못 구한 문제와 같다. 그리고 앨범을 녹음하기 전에 모든 곡의 편곡이 끝난 상태여서 특별히 프로듀서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두 번째 음반에서는 앞으로 곡을 만들어 나가야 하기 때문에 프로듀서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

"엔지니어보다 프로듀서를 외국인으로 쓰고 싶다"
얼마 전(7월 25일, 26일) 일본에서 공연이 있었는데. 많이 배웠다. 시스템에서 차이가 많이 났다. 일본에는 소극장이 없었다. 클럽에서 대부분의 공연이 이루어졌고, 모든 스텝들이 있었다. 클럽 엔지니어들은 많은 밴드들의 공연에도 불구하고 각 밴드의 소리를 정확히 잡아주었다. 그만큼 스탭들과 뮤지션들과의 손발이 잘 맞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에 한국 음악 매니아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해외 인디 씬과의 교류에 대한 생각은? 영/미권은 언어적인 문제 때문에 힘들고, 일본 정도를 생각하고 있다. 보다 활동의 폭을 넓히고 싶다.
장호준 감독의 록큐멘터리 ‘Pop’에 대해서 얘기하면? 우리는 피사체에 불과했다.
김민규 + 윤병주의 프로젝트 밴드 VU는 좋은 생각이었는데. 이후에도 시간이 되면 계속할 생각이다.
2집 작업에 대해서 얘기한다면? 50%는 1집과 비슷할 것이고, 나머지는 멤버들이 좋아하는 취향이 반영될 것이다. 힙합, 테크노, 포크 등.
외국에서 녹음하고 싶은 생각은? 여건이 닿으면 하고 싶다. 하지만 엔지니어보다는 프로듀서를 외국인으로 쓰고 싶다. 그가 우리 음악을 전체적으로 잡아주었으면 한다.
더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요즘에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은 엘리엇 스미스이다. 추천하고 싶다. 구청 관계자 여러분에게 요구하겠는데, 지하철 역사에 자전거 보관소를 많이 만들어 주었으면 한다.








Deli Spice : 1997/도레미레코드
김민규(g, v), 윤준호(b, v), 이승기(key), 오인록(d)

90년대 한국 대중음악계의 얼터너티브 밴드 델리 스파이스가 만들어낸 제대로 된 첫번째 모던 록 앨범이다. 우리는 음악 매체뿐만 아니라 뮤지션들도 일반적으로 당대의 조류에 둔감한 경향이 있다(물론 이 ‘조류’라는 것은 영/미권의 그것을 가리키지만 어쨌든 그들이 전지구적인 뮤직 씬을 좌우하므로 이 흐름을 놓칠 수는 없다. 그리고 이는 ‘시류에의 영합’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헤비메틀에서 테크노까지 당대의 조류를 읽었던 강기영-달파란-과 같은 뮤지션이 우리 나라에서 한 가장 중요한 역할은 뮤직 씬에서의 다양성의 기반을 제공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이를 한번쯤은 생각하게 한다는 데 있다). 그런 점에서 델리 스파이스와 같은 밴드가 만들어낸 작업 결과물들은 그 자체의 평가를 떠나서 국내 뮤직 씬에서 의미있는 일이다. 이 음반으로 국내에 모던 록이라는 조류를 본격적으로 선보인 그들이지만 밴드 시작시 프로 뮤지션을 지향했던 것은 아니었다(물론 지금 그들은 전업 뮤지션을 생각하지만). 그러나 취미로 즐기기 위해서 음악을 시작했다지만 김민규라는 개성적이고 영감 넘치는 뮤지션이 있음으로써 그들은 운명적으로 프로 뮤지션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비록 데뷔 음반 하나만 발표한 상태이지만 그들은 ‘최초’라는 평가 이외에도 ‘한국적인 어법의 모던 록 스타일’을 보여주었다는 얘기를 들어야 마땅하다. 개성적인 기타 톤 감각과 작곡력을 갖고 있는 김민규는 완벽하다는 느낌은 아니지만 독자성을 갖는 자신들만의 음악을 만들어냈고, 이는 ‘델리 스파이스류’라는 또 하나의 트랜드를 만들어냈다. 이 음반에서 자신들이 생각하는 싱글곡은 <가면>이었지만 <챠우챠우-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해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는 명곡이 나중에 인기를 얻게 되었다. 김민규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멜로디컬한 (리듬감도 뛰어난) 기타 연주가 압권인 이 노래는 연가로써(사실 연가가 아니라 증오의 감정이 담긴 노래이지만) 당대 젊은 가슴들을 자극하는 위력을 갖고 있다. 그외 <가면>, <콘 후레이크>, <저승 탐방기>, <귀향>, <누가?>에서도 뛰어난 멜로디의 노래를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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