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이 지났고, 약간의 흰머리와, 조금 늘어난 몸무게를 뺀다면 달라진 것이 별로 없는 블론디가 돌아왔다. 정확하게 15년 전, 1982년 그들이 놓고 갔던 음악을 집어들고, 80년대 뉴 웨이브의 재조명, 또는 왕년에 한몫하던 밴드의 재활도 아닌, 우리가 알고 있던 블론디의 모습 그대로 멋진 컴백을 준비하고 있다. 데보라 해리는 결국 뒤늦은 블론디의 7번째 앨범에 대해 “15곡의 노래 모두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대한 것”이라고 말한다. TEXT | 김형일 VS 데보라 해리 CUTS | BMG

요즘, 어떠세요? 휴, 말도 말아요. 대충 이렇게 되리라고는 생각했지만, 요즘 같아선 신인밴드들이 어떻게 이런 스케줄을 지키며 살아가는지 모르겠어요. 그만큼 바쁘다는 얘기인가요? 바쁜 건 둘째치고, 조금 놀라워요, 모든 것들이 너무 세밀하고 잘 정리되어 있어서요. 우리가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스케줄이 펑크나는 일이 다반사였거든요. 현재 인터넷이나 넷채팅 같은 것도 놀랍고요. 블론디 해산 후 간간히 솔로 활동을 하셔서,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으리라고 보는데요. 네, 그렇긴 해도, 밴드로서 대하는 많은 것들은 상당히 차별화된 느낌이예요. 항상 같이 결정을 하고 의논을 해야 하니까요. 지금 호주에 계신다고요. 호주는 과거 블론디가 성공을 누린 첫 번째 지역이 아닌가요? 그렇죠, 하지만 호주에서는 블론디의 첫 번째 성공적인 그러니까 방안에 발을 들여놓는 정도의 것이었고 가장 큰 성공은 영국에서 였어요. 영국에서의 블론디의 영향력은 얼마 전까지도 느껴지던 것 같던데요? 그런 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 80년대 초 음악을들으면서, 결국 밴드를 만들게 된 여러 영국 밴

드들이 그 당시 저희의 가장 어린 팬들이었던 것 같아요. 가끔 페스티벌 같은 여러 아티스트들이 모이는 장소에서 만나게 되는 그들의 얘기를 들으며, 저희도 모르는 사이에 블론디가 그들에게 뭔가를 의미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되지요. 그런 영향력을 가장 많이 소화한 현재의 밴드라면 누굴 꼽을수 있을까요? 슬리퍼(Sleeper)요? 아주 사랑스런 밴드죠, 실은 몇 년 전 그들이 저희 곡 <Atomic>을 리메이크 하기 전까지는 그들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죠. 아마도 엘라스티카(Elastica)와 노 다웃(No Doubt)같은 밴드들이요. 홀(Hole)의 음악은 들어보셨나요? 저는 커트니 러브(Courtney Love)가 하는 여러 가지 창조적인 일들에 무척 관심이 많아요. 하지만 그녀는… 글쎄요, 우리가 그녀처럼 성이 많이 나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최근에 독자적으로 하시던 일들에 대해서 얘길 좀 해볼까요? 재즈 패신저스(The Jazz Passengers)란 그룹과 함께 활동하셨잖아요. 그 팀과는 계속적으로 작업을 하실 예정인가요? 아마도. 가끔씩 훌쩍 뛰어가 그들과 몇 곡의 노래를 부르거나, 무대 위에 같이 설 수도 있겠지요.

그들과의 작업은 제겐 무척 소중한 경험이었어요. 앞으로 그들과의 지속적인 관계에 대해서는 조금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아요. 이번 앨범의 제목 ‘No Exit-비상구가 없다’는 아주 훌륭한 타이틀인데요. 마치 이번에는 끝남이 없다라는 식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은… 사실, 클렘(밴드의 드러머)이 얘기한 것처럼, 우리에겐 애초에 비상구란 없었던 것 같아요. 우리의 정체성은 벌써 오래전에 설정이 되어있어서 그 동안 블론디의 누구에게도 그것으로부터의 탈출은 불가능한 일이었죠. ‘비상구가 없다’ 이러한 명제는 어떻게 보면 매우 축복을 받는 일일 수도 있어요. 한 연예인 또는 가수가 이렇게 명확하게 그리고 잘 알려진 울타리를 갖고 있다는 것은 하나의 선물이 되겠지요. 앨범의 타이틀 트랙은 과거 히트곡 <Rapture>의 연장선에 있는 노래 같이 들리는데요. (<Rapture>는 블론디에게 세계에서 첫 번째로 랩을 시도한 그룹이라는 명성을 가져다 준 노래이다) 저는 이번과 같은 갱스터 랩을 만드는데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크리스(밴드의 기타리스트)가 이번에는 뭔가 고딕(gothic)적인 분위기가 나는 곡에 대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지요. 원래 우리는 이 곡을 ‘Gothic Cups’라고 불렀고, 흡혈귀에 대

한 노래였죠. 그 다음 쿨리오(Coolio)가 등장했고, 그는 우리가 설정했던 랩 부분에 약간의 트위스트를 주었고 결국 이 곡은 세미 갱스터 랩으로 발표되었죠. 쿨리오와의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지게 됐나요? 그와는 처음 벨기에에서 ‘Night Of The Proms’라는 쇼를 하면서 만났죠. 아주 흥미로운 친구처럼 느껴졌고, 음반사에 우리가 서로 아는 친구 앤디를 통해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해서 얘기를 하곤 했지요. 블론디가 다시 모이고, 이번 앨범에 어떤 아티스트들과 함께 작업을 할까 하는 논의가 이루어질 때도 쿨리오는 항상 저희의 리스트의 영순위의 존재였지요. 이번 앨범이 작곡단계부터 지금 우리가 듣게 되는 완성된 곡으로 나오기까지의 과정은 어떤 것들이었나요? 기본적으로 이번 앨범은 각각의 곡에 대한 개별적인 아이디어로부터 시작되었죠. 그 다음 저희는 멜로디의 주제를 설정하고 부여했고, 연습실에 모여 어레인지를 해 가며, 연주를 해가면서 하나씩 수정 또는 보완을 했어요.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크리스와 지미가 연습했던 노래들을 녹음해온 테이프들을 우리에게 들려주었고 바로 의기투합 결정을 했지요. 과거의 블론디의 스튜디오 작업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요? 우선 우린 모두 지미(밴드의 키보디스트)의 의견대로, 마치 문을 걸어 잠그고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로 했지요. 블론디가 세기말에 결국 어떤 음악들을 들려줄 것인가는 시작단계부터 명확했으니까요. 확실한 것은 우리가 블론디라는 것이었으며, 현재 유행하는 테크노나 힙합 같은 음악 또는 90년대 이후 주류로 떠오른 펑크나 뉴 웨이브의 새로운 성향을 따르지 않기로 했지요. 지금까지 공식적이지는 않지만 몇 번의 공연을 가진 걸로 알고 있습니다. 과거의 블론디 곡들이 현재의 것들과 어떻게 섞이고 있나요? 물론 아직까지는 블론디하면 떠오르는 블론디의 상징적인 많은 곡들을 연주하고 있어요. 아마도 지금까지 약 다섯에서 여섯 곡 정도의 새 곡들을 중간에 자연스럽게 배치해놓았지요. 아직 팬들

이 새 곡에 대한 노출이 별로 없을 때여서 너무 다른 느낌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어느 공연에서도 팬들을 동요시키는 셋 리스트의 가장 대중적인 곡은요? 물론 지역적으로 조금 틀리기는 하지만, 예를 들어 영국이나 유럽에서는 <Atomic>이 가장 많은 반향을 일으키는 것 같고, 호주에서는 <Call Me>, 흥미로운 일은 일본에서 <Hanging On The Telephone>이란 노래가 상당히 많은 인기를 끌었다는 것이에요. 하지만 포괄적으로는 언제나 <Heart Of Glass>로 귀결되죠. 첫 싱글 <Maria>는 얼마 전에 영국 싱글차트 1위를 차지했더군요. 이 곡에 대해서 설명을 부탁드린다면. 지미가 주로 작업을 한 곡이에요. 기본적으로는 한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를 소유하려고 하는 노력이나 그러한 스토리에 대한 얘기지요. 제 자랑은 아니지만, 블론디의 특징중의 하나는, 꼭 집어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저의 보컬을 통해서건 지미의 키보드나 크리스의 기타나 코러스를 통해서건. 아무것도 아닌 주제나 이야기들이 블론디의 화학작용에 의해 적어도 그럴듯하고 멜로딕하게는 전달된다는 것이지요. 지금 당신의, 아마도 최근에 찍은 것 같은 사진을 들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 드려 아직도 도발적이고 뭔가 신비스런 매력을 발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불로장생의 비밀이 있다면? 제가 알기로는 지금 믹 재거보다 2살 어리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웃으며), 다행이네요. 근데 믹 재거가 몇 년 생이죠? 1943년이요. 별다른 비결은 없어요. 그리고 한 4-5년 전의 제 사진을 못 보셨죠? 몸이 굉장히 불었던 적도 있어요. 저는 원래 굉장히 마른 편이었어요. 한동안 채식주의자 생활을 했는데 그때 시스템이 많이 정화된 것 같기도 해요. 이제 우리 CBGB얘기를 좀 할까요? 맥스 캔사스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요? 맥스에서의 앤디 워홀과의 관계는 어떤 것이었나요? 맥스에서의 활동이 블론디에게 가져다 준 결정적인 이득이 있다면?

우리가 맥스에 도착했을 때는 과거 맥스가 갖고 있던 울타리 또는 성격 같은 것들이 많이 변질되어 있었어요. 경영 레벨에서도 주인이 바뀌려는 상태였고. 언더그라운드 행아웃(소굴)이라기보다는 관광지의 성격이 강해지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앤디와의 관계도 그를 진정으로 알기 전에 그의 친구들이 맥스를 떠나버려 그를 공식적으로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우리가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린 후였지요. 하지만 맥스는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시발점이 되어 주었어요. 물론 저에게는 한동안 생계의 수단이 되어준 장소이기도 하지만(그녀는 맥스의 웨이트리스로 일했었다), 맥스는 블론디라는 아마추어 밴드가 어떠한 비판적인 또는 판단적인 시선에 구애 받지 않고 우리들의 음악을 자유롭게 선보일 수 있는 장소가 되어주었어요. 우리가 맥스에서 잠깐이라도 활동했다는 사실은 블론디의 CBGB 진입도 조금은 편하게 만들어 주었으니까요. 블론디는 과거 CBGB에서 같이 무대를 공유했던 다른 밴드들 그러니까 라몬스(Ramones), 토킹 헤즈(Talking Heads), 패티 스미스(Patti Smith) 등과는 아주 다른 성격의 밴드였던 것 같아요. 블론디가 그 동안 누린 성공 또한 그들과는 많이 달랐고요. 생각해보면요, CBGB에서 동일한 성격을 가진 밴드는 하나도 없었어요. 우린 CBGB를 통해 약간은 팝적인 또는 뉴 웨이브적인 성격으로 변해갔지만, 아무도 우리의 음악에 대해 너무 대중적이라던가 또는 유치하다거나 하는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CBGB후의 성공에 대해서는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사실 또는 평가기준은 CBGB라는 뉴욕의 클럽을 거쳐간 많은 아티스트들이 모두 그들의 첫 번째 성공을 다른 곳에서 누렸다는 것이죠. 블론디의 경우도 그러했고, 그 성공을 뒤에 업고 본국으로 향했을 때, 공교롭게도 미국의 시장은 저희의 음악을 위한 준비가 되어 있었죠. 이제 제한된 시간이 다 된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 팬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릴께요. 일단 한국에 대해서는 너무 많이 몰라 죄송하다는 것 하고, 기회가 된다면, 올해의 투어 스케줄을 통해 과거의 블론디가 어떤 밴드였으며, 현재는 어떤 밴드인지를 보여줄 수 있는 재미있는 시간을 기원합니다. 사실 재미란 블론디가 갖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이니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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