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B | 서브 9903 coverstory 커버스토리

게 한 <Rapture>가 높은 어른들의 심사를 무엇으로 건드렸는지 금지곡이 된 탓도 있고 하여, 그럭저럭 디스코 장르와 연관되어 기억되던 블론디 그 이름은, 한국에 새로운 밤 문화, 디스코 테크를 정착시켰으나 그 자리를 곧 유로 댄스에게 양보하고 사라진 디스코와 함께 동시대성을 완전히 잃은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 그 세대에게 십수년이 흐른 후, 작년 프랑스 월드컵 붐을 타고 제작된 코카콜라 CF에서 다국적 수퍼스타 축구선수 군단을 옹위하며 울려퍼지는 <Atomic>과의 재회는 얼마나 생뚱맞았으며, 그 도입부 몇 소절의 라디오 방송 시그널용 혹사는 또 얼마나 새삼스러웠는지. 모두 블론디의 생환 이전의 얘기들이지만.

99년 현재를 기준으로 본다면, 싱어 데보라 해리(Deborah Harrie, 흔히 데비라고 불리고 있죠)와 기타리스트 크리스 스타인(Chris Stein), 드러머 클레멘트 버크(Clement Burke, 줄여서 클렘이라고들 합니다), 그리고 키보디스트 지미 데스트리(Jimmy Destri)로 구성된 뉴욕 출신의 팝 밴드입니다. 밴드의 구심점이자 홍일점 데보라 해리의 나이, 아니 연세가 쉰넷을 헤아리는 엄청난 고참 그룹이죠. 롤링 스톤즈보다야 좀 어리지만.

뭐,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뉴욕 펑크/뉴 웨이브 씬의 얼마 안 되는 생존자들, 그 중에는 오랜 동면을 깨고 녹음실에 들어간 패티 스미스(Patti Smith)하고, 제프 버클리(Jeff Buckley)의 유작「For My Sweetheart The Drunk」에서 여러 곡을 프로듀싱하며 안부를 전했던 텔레비전(Television)의 탐 벌레인(Tom Verlaine)이 있는데요, 그 하나로서 유독 세계적인 인기와 지명도를 누렸던 그들이 해산 후 17년만에 그다지 늙지 않은 모습으로 돌아왔다는건 펑크 문화가 운위되기 시작하는 국내 상황에서 새삼스럽게 돌아볼 만한 일이 아닐까요? 게다가 원래도 자국에서보다 더 큰 환호를 보냈던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 성공의 조짐도 보이고 있고. 첫 싱글 <Maria>가 영국 차트 1위에 오르며, 70년대, 80년대, 90년대를 통틀어 1위 싱글을 가진 첫 아티스트가 되었다는 레코드사의 호들갑은 블론디의 활동시대가 70년대 중반에서 80년대 초라는걸 감안하면 사실, 12월에 태어나 다음달에 두 살이 되어버린 아이의 사례 같은, 좀

겸연쩍은 면이 분명히 있습니다만.

블론디의 시작은 60년대 버즈(The Byrds)풍의 포크록 그룹 윈드 인 더 윌로우즈(Wind In The Willows, 그 왜 자동차 몰고 다니는 두꺼비가 말썽에 휘말리는 유명한 영국 동화에서 따온 이름인듯 하군요) 출신인 옅은 금발의 아가씨 데보라 해리가 스틸레토즈(The Stilettos)의 일원으로 발랄함을 과시했던 70년대 중반 뉴욕의 클럽 씬에서 비롯됩니다. 이를 보고 첫눈에 반한 흑마법 흥행단(Eric Emerson’s Magic Tramps)의 잡역부, 다섯 살 연하의 크리스 스타인은 곧 스틸레토즈에 가입했는데, 이 밴드는 여성 삼인조를 보컬로 내세워 라벨(Labelle), 샹그리라스(The Shangri-Las)같은 60년대 걸 그룹의 커버를 연주했던 70년대식 라이엇 걸 팝 그룹으로서 이기팝, 데이빗 보위 등의 주목을 끌었다고 합니다. 뭐, 어쨌든 데비와 크리스는 곧 열렬한 사랑에 빠져 지저분하기로 악명높은 CBGB의 화장실에서 뭔가를 하다 발각 해산한 후 이 둘은 ‘천사와 뱀(Angel & The Snake)으로 이름을 바꾼 후 CBGB의 무대에 처음 올랐고, 몇 달 후에 블론디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처음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데비는 상당히 긴장한 상태였는
데, 이들의 팝 사운드는 같은 무대에 섰던 랭보와 짐 모리슨의 후예, 패티 스미스의 시낭송, 텔레비전의 강도높은 잼 연주에 비해 무척 우스워보였고, 라이브 실력도 거의 엉망진창, 별로 내놓을 게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75년, 앨런 베트록

비와 크리스는 곧 열렬한 사랑에 빠져 지저분하기로 악명높은 CBGB의 화장실에서 뭔가를 하다 발각됐던 적이 있대나 어쨌대나, 하여튼 74년 8월 밴드가 해산한 후 이 둘은 ‘천사와 뱀(Angel & The Snake)으로 이름을 바꾼 후 CBGB의 무대에 처음 올랐고, 몇 달 후에 블론디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처음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데비는 상당히 긴장한 상태였는데, 이들의 팝 사운드는 같은 무대에 섰던 랭보와 짐 모리슨의 후예, 패티 스미스의 시낭송, 텔레비전의 강도높은 잼 연주에 비해 무척 우스워보였고, 라이브 실력도 거의 엉망진창, 별로 내놓을 게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75년, 앨런 베트록의 주선으로 누군가의 지하실에서 샹그리라스의 <Out In The Street>(이 곡은 올해 나올 컴백 앨범 「No Exit」에도 실렸으니 실로 대단한 생명력입니다)을 포함한 네 곡의 데모를 만들게 되고, 그 세션에서 크리스는 ‘The Disco Song’을 제안하는데 이게 바로 <Heart Of Glass>의 원형이었던거죠. 그 해 봄에 클렘 버크가 드러머로 영입되는데, 베이시스트 프레드 스미스(Fred Smith)가 텔레비전에 가입하기 위해 팀을 떠납니다. 이 결별에 큰 상처를 받은 데비와 크리스는 거의 다 때려치울 기세였는데(데비는 아직도 그 사건으로 당시 탐 벌레인의 애인이었던 패티 스미스를 원망하고 있다고 합니다), 클렘이 만류하며 베이시스트로 친구 게리 발렌타인(Gary Valentine)을 데려왔고, 파피사(Farfis) 키보드를 대동한 제임스 데스트리가 합류하면서 초기의 블론디 진용이 완비, CBGB 관중들도 이들을 다시 보게 됩니다. 그 무렵 데비 해리는 블론디의 아이덴티티를 발견했던 것이죠. 이 무렵 60년대 팝 베테랑인 리차드 고터러(Richard Gottehrer)를 프로듀서로 첫 싱글 <X-Offender>를 제작하는데, 데비와 발렌타인이 만든 이 곡은 어린 여자친구와 문제를 일으켰던 발렌타인의 경험에 바탕한 것으로 원래 제목은 ‘Sex Offender’였다죠. 그리고 데뷔앨범 「Blondie」가 펑크 씬의 분위기를 못 미더워하는 큰 레이블의 외면 끝에 프라이빗 스탁(Private Stock)에서 나오게 됩니다.

음, 물론입니다. 77년의 데뷔앨범 「Blondie」는 고터러아 크레이그 레온(Craig Leon)의 공동프로듀싱으로 발매되었는데, 60년대 걸 그룹 보컬에 앤디 워홀의 전복적 아트에 영향받은 데비와 크리스의 배경이 녹아있으며 무엇보다 팝과 펑크의 경계선에서 영리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는 점이 주목됩니다. 걸 그룹의 산실 브릴 빌딩의 송라이터 엘리 그리니치(Ellie Greenwich)가 백보컬로 도와준 달콤한 왈츠풍의 <In The Flesh>는 데비가 한 때 뉴욕돌즈의 데이빗 조한센(David Johansen)에게 가졌던 짝사랑 얘기를 담았는데, 호주에서 2위에 오르는 그들 최초의 히트곡으로 기록되죠. 앨범 작업시 크리스의 아트적 지향과 반대항에서 균형을 맞춘 것이 차세대 지미 페이지 지망생들을 친구로 가지고 있었던 클렘의 영향이었다고 데스트리는 회고합니다. 한편 블론디의 사운드가 구체화되면서 이들의 구제품 모드 패션은 디자이너 스티븐 스프라우즈의 조언을 받아 환한 색조의 데비와 나머지 멤버의 좁은 넥타이 흑백 패션(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 튀어나온 듯한)으로 정리됩니다.

77년 3월, 블론디는 텔레비전의 서포트 밴드로 영국을 방문하며 처음으로 대중의 환호를 받습니다.
펑크의 굉음이 귀에 쟁쟁한 영국인들에게 그들의 감미로운 팝 사운드는 해독제 같은 역할을 했던 것이죠. 사실, 뉴욕 씬에서 천대 받던 그들이 걸작「Marquee Moon」을 막 내놓은 비평가들의 달링, 텔레비전을 서포트하게 된 데는 지원을 해 줄 레이블을 갖고 있었고, 얌전하니 문제를 일으킬 것 같지 않다는 이유 밖에 없었는데요. 블론디를 환영한 또다른 지역은 77년 2월, 위스키 어 고고(Whisky-A-Go-Go)에서 공연을 가졌던 LA였고, 막 싹터오는 뉴 웨이브 씬의 환영을 받은 이들은 자신들의 싸구려 미학(trash Aesthetic)에 자신을 가지게 되고, 뉴욕의 자족적인 공동체를 떠나 다른 장르를 엿보며 밴드의 색채를 다채롭게 만들기 시작합니다.

꼭 그런 건 아니었지만, 무엇보다 데비 해리가 마릴린 먼로의 표본을 계승한 금발 백치 미녀의 이미지로 스타로 떠오른게 78년 2집 「Plastic Letters」무렵이었습니다. 그들 성공의 가장 큰 전환점이 된 크리살리스(Chrysalis) 레이블로 이적한 것도 사장 테리 엘리스가 데비의 무대에 홀딱 반했던 탓이 컸다고 하고, 밴드의 매니저는 섹스 심볼로 떠오르는 그녀의 이미지를 완전하게 하기 위해 크리스와 헤어지라고 종용할 정도였다고 하죠. 리차드 고터러가 프로듀스한 2집은 데뷔 앨범에 비해 비교적 평가는 떨어지지만, 60년대 뉴욕 R&B밴드 랜디 &더 레인보우즈(Randy & The Rainbows)의 <Denise>를 리메이크한 강력한 팝송, <Denis>와 또다른 데비/발렌타인의 곡 <(I’m Always Touched By Your) Presence Dear>가 영국 차트 10위권에 오르는 성공을 거두며 미국에서도 어느 정도 인지도를 얻게 됩니다.
노련한 크리살리스 팀에 의해 갈고 닦일 기회를 얻은 블론디는 70년대 히트 메이커인 글램록 프로듀서 마이크 채프먼(Mike Chapman)과 함께 78년 여름, 뉴욕의 파워 스테이션 스튜디오에서 그들의 기

념비적 앨범, 「Parallel Lines」를 제작합니다. 채프먼의 의도는 펑크니, 뉴 웨이브니 다 잊고 위대한 팝 앨범, ‘모던 록큰롤’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었고 (어째, 홀의 지난 앨범 자평과 비슷하지요?), 당시 뉴 웨이브의 쇠퇴에 비추면 적절한 타이밍인 셈입니다. 이 때의 라인업은 게리 발렌타인 대신 영국인 베이시스트 나이젤 해리슨(Nigel Harrison)이 가입하고 프랭크 인판트(Frank Infante)가 기타 사운드를 더한 체제였는데, 이 둘은 최근 블론디의 재결합을 반대하며 자신들의 법적 권리를 내세우는 백만 달러짜리 소송을 내기도 했습니다. 밴드의 작곡력을 자랑하는 주옥 같은 팝송들로 가득한 이 78년 버전 최신형 팝록 앨범에서 디스코-록 퓨전인 <Heart Of Glass>, <Sunday Girl>등 네 곡이 영국에서 히트했고, ‘블론디매니아’가 과언이 아닐 정도의 열광을 몰고 왔으며, <Heart Of Glass>는 영국과 미국, 대서양 양안에서 1위를 기록하며 블론디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놨습니다. 이에 대해 뉴욕 씬의 옛 동료들은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고 멤버들도 다소의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는데, 그들이 자라난 토양의 반상업주의적 태도를 보면 이해갈만도 할 일입니다.

물론 겪었습니다. 무엇보다 쉴 틈 없는 세계 투어를 통해 멤버들 사이에 불화가 싹텄고, 데비, 크리스 커플 사이에서 시작해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과 싸우는 형편이었는데, 밴드의 주 작곡자 크리스와 지미, 그리고 간판 스타인 데비 채제에 대해 새 멤버 인판트가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반기를 들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성공에 따른 물질적 보상도 제대로 되지 않아 매니저를 바꾸는 등 진통을 겪었습니다.
그 와중에 나온 79년작 「Eat To The Beat」는 <Dreaming>, <Union City Blue>, 그리고 세 번째 영국 1위 곡이 된 <Atomic>(바로 그!)을 내 놓으며 선전했으나 전체적인 레코드는 싸늘하고 인위적이며 전작의 톡쏘는 맛이 사라진 아류라는 결과에 그치고 말았고, 이는 데비 해리의 섹시한 외양과 무대에 부조화를 낳는 결과가 되었죠. 투어가 끝나자 데비와 크리스는 둘 만의 거처로 칩거해 버렸고, 80년에서 82년사이 블론디 멤버들은 일 외에는 서로 얼굴도 맞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블론디는 1980년을 맞아 독일출신 디스코 프로듀서 조르지오 모로더(Giorgio Moroder)와 데비 헤리가 함께 만든 <Call Me>를 내 놓아 두 번째로 영미 양국 차트를 점령합니다. 이 곡은 젊은 시절 리차드 기어가 매력을 발산했던 영화 ‘American Gigolo’의 테마이기도 했어요. 뒤이어 나온「Autoamerican」은 폭넓은 스타일로 특징 지워지며 <Tide Is High>(영미 1위), <Rapture>(미국에서 1위) 두 히트곡을 낳는데, 전자는 패러곤즈(The Paragons)의 고전적 레개곡의 리메이크였죠. <Rapture>는 특히나 런DMC로 힙합이 주류 음악계에 선보이기 5년 전에 최초로 흑인 힙합과 만난 백인 팝의 성과물로 기록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호사다마랄까. 밴드의 장르혼합적인 스타일은 멤버들의 참여도가 낮아지는 결과를 낳았고, 급기야 프랭크 인판트는 레코드 작업에 참가하지 못했다고 소송을 내기까지 하는데, 이런 것도 소송거리가 되나 모르겠어요. 어쨌든 분쟁은 해결되어 그는 그룹에 잔존하지만 81년, 멤버들은 각자 개인적인 프로젝트를 시작하는데, 특히나 데비의「Koo Koo」는 기거(영화 ‘에일리언’의 괴물 디자인으로 유명하죠)의 기괴한 아트웍, 고품격 디스코 그룹 쉭(Chic)멤버들의참여로 기대를 모았으나 별 호의적인 평은 못 듣는데요, 그래도 골드를 기록하긴 했지만. 「The Best Of Blondie」가 그 해 가을에 발표되었는데, 이것은 그들의 엣센스만을 모아, 높은 가격대 성능비를 자

랑하는 멋진 아이템입니다만, 결국 밴드 내 창작력의 쇠잔을 나타내는 것이었고, 이는 크리살리스와의 계약 문제로 어쩔 수 없이 발매한 82년「Hunter」에서 극명히 드러나며 멤버들은 이로써 각자 갈 길을 가게 됩니다.

맞습니다. 80년대 중반, 천포창이라는 희귀한 유전병에 걸린 크리스 스타인을 간호하느라 활동을 중단했던 (이제는) 데보라 해리는 음악과 배우 두 방면의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86년작 「Rockbird」는 싸구려 풍선검 록이라는 블론디 초기 스타일로 회귀하며 <French Kissin’>의 미국 히트를 낳았고, 크리스와 함께 작업하여「Def, Dumb And Blonde」(89)와 좀더 록적인 접근을 보인「Debravation」(93)을 발표했지만, 비평, 흥행 양면의 성과는 미미했습니다. 좀더 흥미로운 것은 영화쪽인데 이미 79년 ‘Union City’로 시작된 배우 활동으로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82년작 ‘Videodrome’ 출연, 그리고 악명높은 컬트 감독 존 워터스의 떠들썩한 한판 소동 ‘Hairspray’에선 소니 보노(셰어의 전남편으로 더 유명한 전직 뮤지션, 정치가, 현재 고인)의 아내 역을 맡았습니다. 재결성 이전 최근의 활동이라면 뉴욕의 밥 앙상블 재즈 패신저스(The Jazz Passengers)의 96년작 「Individually Twisted」 에 초빙되어 리드 보컬을 맡아 흥미로운 결과를 얻었는데, 그녀는 이미 「Autoamerican」에서 믿을만한 재즈 보컬을 선보인 적 있었습니다. 여기서는 엘비스 코스텔로와 함께 <Doncha Go Way Mad>라는 재미있는 듀엣 곡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들을 반짝 스타 쯤으로 취급하는 미국쪽 분위기와는 달리 고품격 팝송에 언제나 반색하는 영국 측에서는 특히 브릿팝 등장 이후 데비 해리의 동정에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 왔으며 특히 얼마 전 입담 센 여성 루이즈 웨너가 이끄는 혼성 그룹 슬리퍼에서 영국의 블론디 송가 <Atomic>을 리메이크하기도 했죠.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크리스가 병에서 회복한 80년대 중반 연인으로서 종말을 고했으나 이후로도 함께 음악 작업을 하는 가까운 친구로 남아있으며 그것은 현재도 유효하다 합니다.

첫 싱글 커트곡 <Maria>는 전형적인 블론디 팝입니다. 제목부터 감각적이라는 냄새가 스물스물한 머릿곡 <Screaming Skin>은 흥겨운 스카 팝인데, 쉰 넘은 아주머니한테서 이렇게 섹시한 느낌이 나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재즈 패신저스와의 경험은 <Boom Boom In The Zoom Zoom Room>의 나긋나긋한 재즈 보컬에 충분히 녹아있구요. 90년대의 힙합 스타 쿨리오를 초빙한 <No Exit>는 고딕적인 힙합 곡인데 이걸 흑인 음악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Rapture>보다는 확실히 뿌리 쪽에 더 가까워졌다고 할 수 있겠지요. 80년대 팝이 그리운 사람이라면 드럼 시퀀싱이 둔탁하고 경쾌한 <Forgive And Forget>에서 충분히 만족을 느낄 듯 하고. <Night Wind Sent>의 감미로운 휴식까지, 90년대에 블론디가 보여줄 수 있는 걸 욕심껏 시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흥미로운 앨범입니다. 블론디 초창기에 인연을 맺었던 크레이그 레온이 프로듀싱을 맡아 복고적인 느낌을 충분히 살렸

고요.

데이빗 조한슨의 말을 인용해 볼까요? “그녀는 극도로 지성적인 사람이다. 그 마릴린 먼로 문제는 그저 융(Jung)적인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원형의 문제였다. 그녀는 하나의 예술 프로젝트로서 자신을 그 원형으로 탈바꿈시켰던 것이다.”
또, 데보라 해리 자신의 발언입니다. “그 때는 내가 스스로를 충격적이라 생각했지만, 요새 기준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방면에 여자들이 별로 많지 않았고, 특히 강한 의지를 가진 이들은 더욱 그랬다. 티나 웨이머스, 리디아 런치는 좀 이후에 도착했고. 물론 여성해방운동이 언론에 보도되고 있었고,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그 당시 나는 정말 여자들을 대상물로 만드는 그런 것들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확실한 동기가 되었다.”
마릴린 먼로가 상당히 영리하고 지적인 인물이었다는 후일담이 들려오기도 하지만, 스스로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데보라 해리의 경우는 자신이 체현하는 남성의 궁극적인 꿈의 여인상, 금발 백치 미인상을 상당히 의식적으로, 아이러니를 담아 만들어냈습니다. 온순하고 소극적인 소녀가 이상형을 그리는 60년대 걸 그룹 스타일의 R&B를, 그녀는 극히 여성적인 보컬에 담아 초연하게 부르면서 가사에서는 성적인 보상을 갈구하는 거리의 강한 여성상을 그려낸 것입니다. ‘첫 봐도 풋내기가 아니며’ (<Dreaming>), ‘그냥 포기하는 그런 여자가 아닌’(<The Tide Is High>) 그녀는, <Rip Her To Shreds>에선 물고 뜯고 싸우는 그루피의 목소리, <Look Good In Blue>의 양순한 척 농을 던지며 유혹하는 여자, 다른 여자의 남자를 빼앗으려고 추파를 던지는 소녀 (<In The Flesh>)등을 구현했고, 남자의 주도에 순종하고 유혹당하는 목적물로서의 섹슈얼리티가 아니라 방해물을 극복하고 원하는 걸 쟁취하려는 강인한 주체의 제시는 당시로선 선구적인 전복이었다 아니 할 수 없으며, 그 후예들을 우리는 마돈나와 커트니 러브 같은 더욱 노골적이고 터프한 타입에서 보게 되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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